08화 아이가 벌써 섹스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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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할 때 되면 다시 찾아오는 예방접종 일정입니다. 4살 이후로는 독감 백신 말고 주사를 맞을 일이 없었는데, 11살이 되면 3개를 추가로 맞아야 하죠. Tdap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 MenACWY (4가 수막구균), HPV (사람유두종바이러스) 백신입니다. 이 중 Tdap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맞고, MenACWY는 한국 예방접종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아마 한국에서 워낙 드물게 일어나는 감염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100만 명 당 1명 꼴로 발생합니다). 그리고 HPV 백신은 한국과 미국 둘 다 맞는데, 백신의 접종대상과 접종 횟수, 백신 종류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개발된 백신 중 유일하게 암 예방을 하는 백신으로 독특하기 때문에, HPV 백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HPV 백신은 젊은 백신입니다. 이전에 건강검진 4년 차 글에서 설명했었던 수두 백신처럼 개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수두백신이 1995년, HPV 백신은 2006년 개발). 그러다 보니 다른 백신에 비해 접종률도 인식도 낮은 편이고, 나라마다 접종 정책이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접종률이 2015년에는 56%, 2020년에는 75%로 최근에 많이 올랐고, 한국은 오히려 미국을 앞질러 2020년 기준 12세 여성의 접종률이 86%라고 합니다 [1,2]. 한국은 아직도 남자가 예방접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백신을 맞으려면 본인부담으로 몇십만 원을 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접종률이 낮았던 것이죠.

HPV 백신이 중요한 이유는 자궁경부암을 예방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의료접근성이 늘고 체계적인 자궁경부암 검진 체계가 자리 잡아 몇십 년 전에 비해 환자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여성 사이에선 암으로 인한 사망원인 중 4위를 차지하고, 전 세계적으로 매년 3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합니다 [3]. 최근에는 HPV로 인한 남성에서의 구인두암의 발생도 늘고 있는데, 이도 예방할 수 있어 남성에게도 중요한 백신입니다. 그 많은 백신 중 HPV 백신은 유일하게 암을 예방하는 백신이고, 백신에 따라 70%에서 100%의 높은 예방률을 보여주기 때문에, 의사로서 환자에게 강력하게 권하는 백신 중 하나입니다.

미국이 한국보다 HPV 백신에 대한 인식이 더 높긴 하지만, 그래도 11살 건강검진에서 HPV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가끔 질문을 합니다. 특히 성병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보니, 아직 성관계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왜 미리 성병을 예방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부모님도 계시죠. 그럴 때에는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해드리죠. 

1. HPV가 뭐죠?

> Human Papilloma Virus (사람유두종바이러스)는 주로 성적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인데, 여성에게 자궁경부암을, 그리고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구인두암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백신으로 예방이 필요합니다.

2. 아이가 어린데 굳이 맞아야 하나요?

> 미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고등학교 졸업 전 성관계를 가질 확률은 48%입니다***. 성관계는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고 15세 이전에는 백신을 2회만 맞으면 되지만, 그 이후에는 3회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미리 맞는 게 좋습니다.

3. 안전하긴 한가요? 

> 100만 명 이상을 관찰추적한 결과 심각한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0.1%의 확률로 실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백신을 맞은 후 15분 동안 병원에서 앉아있기를 권합니다 [4].

*** 최근에 티비에서 한국의 첫 성관계 나이가 평균 13.6세라는 내용이 "고딩엄빠"에 나와 논란이 됐는데, 이는 "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첫 상관계 나이가 평균 13.6세로 자극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통계를 왜곡한 것입니다. 2022년 한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2%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국 청소년보다 한국 청소년이 성관계를 더 늦은 나이에 가지는데, 한국도 미국처럼 HPV 백신을 일찍 맞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도 성관계를 일찍 시작하는 아이들이 적지만 있고, 일찍 맞아서 해가 될 것이 없기 때문에 한국 청소년도 미리 맞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미국보다 접종 나이가 1년 늦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보통 이렇게 백신을 권하면, 백신을 거부하는 부모는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백신을 거부하는 안티백서가 아닌 이상). 그렇게 정기적으로 11살에 1차 접종을 하고, 다음 해 12살 정기검진을 할 때 2차 접종을 합니다. 이때 백신을 맞지 않았어도 남자 여자 둘 다 26세까지 접종대상이 됩니다. 백신은 가다실 9가를 사용하고요. 1회 접종 비용이 약 $300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접종대상이기만 하면 보험에서 전액 지원이 됩니다.

반면 한국은 예방접종 정책이 다소 제한적이고 복잡합니다 [5]. 우선 모든 연령의 남성은 접종대상이 아니어서 비용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여성의 경우 12세에서 17세 사이가 접종대상이고, 18살에서 26살은 "저소득층 여성"에 한해서만 접종대상입니다. 사용하는 백신도 가다실 9가는 지원되지 않고, 2가 (서바릭스) 혹은 4가 (가다실)만 지원되죠. 백신도 가격이 있다 보니 미국만큼 폭넓게 지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저소득층 여성"을 접종대상으로 정한 것인데요,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려는 취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안 그래도 접종률이 낮은데 백신을 맞기 위해 저소득층임을 증빙하는 서류까지 요구하면 더욱 백신의 접근성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다름 아닌 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인데,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가다실 9가를 지원하지 않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병원마다 백신 가격의 편차가 있지만, 가다실 9가는  22만 원, 가다실 4가는 17만 원, 서바릭스(2가)는 14만 원으로 추정이 되는데요 [6]. 사실 2가 백신만 맞아도 자궁경부암의 70%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거의 100%로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가다실 9가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는지는 고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백신을 맞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현재로서는 미국에선 지원이 되고, 한국은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남자들에게 접종을 하는 것은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져 여성에게 우선적으로 접종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7]. 그러나 최근에는 학계에서 HPV가 남성에서 구인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고, 갈수록 구인두암이 많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남성에게도 접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8]. 미국에선 오히려 HPV로 인한 남성의 구인두암 발생률이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앞질렀다고 합니다 (1년에 12,500명 대 10,800명) [9]. 

사실 한국에서 HPV 백신 지원대상에 남성도 포함이 되어야 하는지는 도마 위에 올라있는 주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자에게 확대하는 공약을 내긴 했으나 그 이후 비용대비 효과가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예산부족 문제도 있어 추가적인 자문과 심의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10].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HPV 백신처럼 개발되지 얼마 되지 않은 백신이 표준 예방접종 일정표에 추가되어 일정표가 계속 진화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백신의 세계에선 새로운 백신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어린아이들에게서 세기관지염을 일으키는 RSV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어 미국 예방접종 일정표에 추가가 되었죠. 외우고 있어야 하는 백신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소아과 의사로서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mage credit: Pixabay - Saydung89

 references:

1. Lu PJ, Yankey D, Fredua B, Hung MC, Sterrett N, Markowitz LE, Elam-Evans LD. Human papillomavirus vaccination trends among adolescents: 2015 to 2020. Pediatrics. 2022 Jul 1;150(1):e2022056597.

2. https://nip.kdca.go.kr/irgd/support.do?service=getNewsView&strNum=274&PROSEQNUM=461&SEARCHTYPE=&SEARCHWARD=#:~:text=만%2012세%20여성청소년,을%20지원받을%20수%20있다.

3. Zhang X, Zeng Q, Cai W, Ruan W. Trends of cervical cancer at global, regional, and national level: data from the Global Burden of Disease study 2019. BMC public health. 2021 Dec;21:1-0.

4.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1e.

5.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079

6. https://my-doctor.io/healthLab/info/437#

7. Castle PE, Scarinci I. Should HPV vaccine be given to men?. Bmj. 2009 Oct 8;339. 

8. Schmeler KM, Sturgis EM. Expanding the benefits of HPV vaccination to boys and men. The Lancet. 2016 Apr 30;387(10030):1798-9.

9. https://www.cdc.gov/cancer/hpv/statistics/cases.htm

10.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610494&pwise=mMain&pWiseMain=D10#pressRelease